한국성인

2012.05.15 16:02

권희 바르바라

조회 수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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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 부인
순교일 1839-09-03
관련성지 서소문 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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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 바르바라

 

이광헌의 부인이며 이 아가타의 어머니인 권희는 1817년경 남편과 함께 입교하였다. 박해 때문에 궁핍한 생활을 하면서도 회장을 맡은 남편을 도와 주교와 신부들을 맞아들였고 또 교우들을 권면하여 미사에 참여하게 하고 강론을 듣게 하였다.

 

1839년 4월 7일 가족과 함께 체포되어 포청과 형조에서 수차의 형벌과 고문을 당하였다. 특히 열두 살밖에 안 된 어린 아들이 고문당하는 처참한 광경을 지켜보면서도 끝내 모정을 억제하고 온갖 유혹과 형벌을 견디어 냈다.

 

처참한 5개월 동안의 옥살이 끝에 9월 3일 다섯 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고 46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1. 이광렬 요한

    이광렬 요한 ‘경삼’으로도 불렸던 이광렬은 명문 양반인 광주 이씨의 후예로 태어났다. 22세쯤 형 이광헌과 함께 입교한 뒤 헌신적으로 교회 일에 참여하였으며, 정하상(丁夏祥), 조신철(趙信喆), 유진길(劉進吉) 등과 함께 북경을 왕래하며 나 베드로(모방) 신부, 정 야고보(샤스탕) 신부 등을 맞아들였다. 북경에서 세례성사를 받고 귀국한 뒤로는 육식을 끊고, 극기와 인내로 동정을 지키며 생활하였다. 1839년 4월 7일 체포되어 혹형과 고문을 받았으나 모두 이겨 내고, 7월 20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45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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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영희 막달레나

    이영희 막달레나 동정 순교자 이영희는 경기도 봉천(奉天)에서 태어났다. 과부가 되어 친정에 돌아온 고모 이매임의 권면으로 어머니 허계임, 언니 이정희와 함께 어린 나이에 입교하였다. 성장하면서 동정을 지킬 것을 결심하여 혼기에 이르자 혼담을 피해 호랑이에게 물려간 것처럼 꾸미고 상경하여, 이매임과 함께 살며 신앙 생활을 하였다. 1839년 김성임, 김 루치아, 어머니, 언니와 함께 자수한 뒤, 포청과 형조에서 일곱 번 형문(刑問)을 받고 사형을 선고받아 7월 20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31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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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김 루치아

    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김 루치아는 강원도 강촌(江村)에서 태어나 아홉 살 때 어머니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14세 때 동정을 지킬 것을 결심하였고, 부모를 여읜 뒤로는 자신을 받아 주는 교우들의 집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살았다. 1839년 기해박해 때 포졸들에게 자수한 뒤, 포청과 형조에서 천진한 태도와 한결 같은 신앙으로 모든 형벌과 고문과 유혹을 참아 냈고, 교리에 대한 심문 중에도 기막힌 비유와 논리정연한 대답으로 형관을 감동시켰다. 7월 20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아 22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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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원귀임 마리아

    원귀임 마리아 동정 순교자 원귀임은 경기도 고양군 용머리(龍頭里)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여기저기를 떠돌며 살다가 아홉 살 때 서울의 친척집에서 삯바느질로 생계를 꾸려 나갔다. 이 때 동정으로 살아갈 것을 결심하고 언제나 모범적인 신앙 생활을 하였다. 1839년 3월 29일 원귀임이 있던 친척집이 포졸들의 습격을 받게 되자 재빨리 피신하였으나 길거리에서 원귀임을 아는 사람에게 들켜 체포되었다. 체포될 때 정신을 잃을 정도로 당황했던 원귀임은 정신을 가다듬고 포청으로 끌려갔다. 포청에서 배교를 강요하며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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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박큰아기 마리아

    박큰아기 마리아 박큰아기 마리아는 외교인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궁녀인 동생 박희순의 권면으로 입교하였다. 1839년 4월 15일 동생과 함께, 피신해 있던 전경협의 집에서 체포되어 포청과 형조에서 혹형과 고문을 견디어 냈다. 동생 박희순이 순교한 지 100여 일이 지난 9월 3일 다섯 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그 때 나이는 54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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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권희 바르바라

    권희 바르바라 이광헌의 부인이며 이 아가타의 어머니인 권희는 1817년경 남편과 함께 입교하였다. 박해 때문에 궁핍한 생활을 하면서도 회장을 맡은 남편을 도와 주교와 신부들을 맞아들였고 또 교우들을 권면하여 미사에 참여하게 하고 강론을 듣게 하였다. 1839년 4월 7일 가족과 함께 체포되어 포청과 형조에서 수차의 형벌과 고문을 당하였다. 특히 열두 살밖에 안 된 어린 아들이 고문당하는 처참한 광경을 지켜보면서도 끝내 모정을 억제하고 온갖 유혹과 형벌을 견디어 냈다. 처참한 5개월 동안의 옥살이 끝에 9월 3일 다섯 명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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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박후재 요한

    박후재 요한 ‘명관’으로도 불리던 박후재는 경기도 용인 지방 교우 가정에서 태어났다. 1801년 신유박해로 아버지를 여읜 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성장하면서 물장사를 하는 노모를 도와 짚신과 미투리를 팔아 생활하였고, 36세 때 교우 처녀와 결혼하였다. 1839년 5월 아내를 피신시키고 혼자 체포된 박후재는 포청에서 치도곤 40대를 맞는 가혹한 형벌을 당하였다. 살이 떨어져 나가고 뼈가 드러나 피가 낭자하게 흘렀으나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함께 갇힌 교우들을 권면하고 또 흉악한 죄수들에게는 천주교의 바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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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이정희 바르바라

    이정희 바르바라 경기도 봉천(奉天)에서 태어난 이정희는 과부가 되어 돌아온 고모 이매임(李梅任)의 권면으로 어려서 어머니 허계임(許季任), 동생 영희(英喜)와 함께 입교하였다. 그 뒤 열심한 신앙 생활을 하며 동정으로 살아갈 것을 결심하였다. 혼기에 이르러 아버지가 외교인 청년과 결혼시키려 하자 병을 핑계삼아 3년을 버틴 뒤 교우 청년과 결혼하였다. 그러나 결혼한 지 2년 만에 남편을 잃고 잠시 친정에 있다가 신앙 생활을 위하여 집을 떠나 서울에 있는 고모 이매임의 집에 와서 살았다. 1839년 기해박해 시초에 남명혁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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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이연희 마리아

    이연희 마리아 이연희는 남명혁(南明赫)의 부인으로 성품이 강직하고 사리에 밝았다. 회장인 남편을 도와 공소(公所)를 세워 주교와 신부를 맞아들이고 또 교우들을 가르쳐 성사를 준비하며 언제나 모범적인 신앙 생활을 하였다. 기해박해 초인 1839년 4월 7일 가족과 함께 체포되었는데, 포청에서 열두 살 된 어린 아들이 고문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이는 주님의 영광입니다." 하며 모정을 억누르고 자신도 혹형과 고문을 감수하였다. 형조로 이송되어 다시 3차의 형문을 받았으나 역시 굴하지 않았다. 9월 3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다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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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김효주 아녜스

    김효주 아녜스 언니 김효임(金孝任)과 같이 동정 순교자인 김효주는 서울 근교 밤섬의 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 뒤 경기도 고양군 용머리(龍頭里)로 이사해 살았다. 아버지를 여읜 뒤 온 가족이 함께 입교하여 중국인 유방제(劉方濟) 신부에게 세례성사를 받았다. 언니 김효임, 동생 김 클라라와 함께 동정을 지키기로 결심하고는 아름다운 덕행과 극기로써 모범적인 신앙 생활을 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5월 3일 언니 김효임과 함께 체포되어 포청에서 매우 혹독한 형벌과 잔인한 고문을 받았으나 끝까지 신앙을 지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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