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성인

2012.05.15 15:46

김 바르바라

조회 수 1144
Extra Form
신분 과부
순교일 1839-05-27
관련성지 옥사

saint_015.jpg

 

김 바르바라

 

시골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김 바르바라는 13세경 서울로 올라와 교우 황 마리아의 집에서 식모로 생활하며 교리를 배워 신앙 생활을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동정으로 살고자 결심하였으나 혼기가 차자 부모의 강요를 이기지 못하고 외교인과 혼인하여 남매를 두었다.

 

혼인한 지 15년 만에 남편이 사망하자 딸 하나만을 데리고 신앙 생활에만 전념하였다. 그러던 중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3월 김 바르바라는 몸붙여 살던 집에서 집주인과 함께 체포되어 포청으로 끌려가 심한 형벌과 고문을 받았으나 용감히 신앙을 고백하였다.

 

3개월 옥살이 끝에 5월 27일 굶주림, 기갈, 염병 등으로 옥사함으로써 순교하였다. 그 때 나이는 35세였다.


  1. 박희순 루치아

    박희순 루치아 동정녀이며 순교자인 박희순은 뛰어난 미모와 재주 때문에 어려서 궁녀로 뽑혀 궁궐에 들어갔으나, 어린 순조의 유혹을 용기와 덕으로 물리쳐 그 명성이 세간에 널리 퍼졌다. 30세경 천주교를 알게 되어 입교하였으나 궁녀의 신분으로는 신앙 생활이 어려워 병을 핑계로 궁궐을 나왔다. 그 뒤로 조카의 집에 살면서 언니 박 큰아기와 조카의 식구들을 입교시켰다. 1839년 기해박해 때 천주교인으로 밀고되자 박희순은 조카의 가족들과 함께 전경협(全敬俠)의 집으로 피신하였다. 그러나 4월 15일 전경협의 집을 습격한 포졸...
    Read More
  2. 남명혁 다미아노

    남명혁 다미아노 서울에서 태어난 남명혁은 젊어서 무뢰배들과 어울리며 매우 난폭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였으나 30세경 입교한 뒤로 모든 세속의 나쁜 일과 손을 끊고 오직 신앙 생활에만 전념하였다. 유방제(劉方濟)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더욱 열심히 살아 이광헌과 함께 회장으로 임명되어 예비신자를 모아 가르치고 병약자들을 방문하였으며 또 ‘성의회`(聖衣會)라는 신심 단체에 가입하여 신부를 도와 교회 일을 열심히 하였다. 그는 1839년 기해박해 초 한 예비신자의 밀고로 4월 7일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체포되었는데 이 때 그의 ...
    Read More
  3. 권득인 베드로

    권득인 베드로 서울에서 태중 교우로 태어난 권득인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16세 되던 해에 어머니마저 여읜 뒤 혼인하였다. 얼마 동안은 약장사를 하는 형과 함께 살다가 분가하여 성패(聖牌)와 성물(聖物)을 만들어 팔며 어렵게 생계를 꾸려 나갔는데 항상 새벽닭이 울 때 일어나 촛불을 켜 놓고 날이 밝을 때까지 기도하는 독실한 신앙 생활을 하였다. 권득인은 1839년 1월 16일 아내, 처남, 어린 자녀 등 4명의 가족 그리고 김로사와 함께 체포되어 포청과 형조에서 매우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받았으나 그의 신앙에는 흔들림이 없...
    Read More
  4. 장성집 요셉

    장성집 요셉 서울에서 태어나 한강변 서강(西江)에서 살았던 장성집은 30세경에 교리를 배우고 예비신자로 열심히 생활하였다. 그러나 점차 교리에 회의를 품어 신앙 생활을 중지하고 세속 향락과 재산 모으는 일에 몰두하였다. 교우들의 권면과 가르침으로 회개한 뒤로는 자신의 죄를 보속하고 세속의 유혹을 피하기 위하여 방에 틀어박혀 추위와 굶주림을 무릅쓰고 기도와 성서 연구에만 전념하였다. 이러한 태도에 집안 어른들이 “예전처럼 자유롭게 드나들며 생활하는 것이 너의 신앙 생활에 무슨 방해가 되느냐?" 하고 만류하자 장성...
    Read More
  5. 김 바르바라

    김 바르바라 시골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김 바르바라는 13세경 서울로 올라와 교우 황 마리아의 집에서 식모로 생활하며 교리를 배워 신앙 생활을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동정으로 살고자 결심하였으나 혼기가 차자 부모의 강요를 이기지 못하고 외교인과 혼인하여 남매를 두었다. 혼인한 지 15년 만에 남편이 사망하자 딸 하나만을 데리고 신앙 생활에만 전념하였다. 그러던 중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3월 김 바르바라는 몸붙여 살던 집에서 집주인과 함께 체포되어 포청으로 끌려가 심한 형벌과 고문을 받았으나 용감히 신앙을 고...
    Read More
  6. 이 바르바라

    이 바르바라 이 바르바라는 독실한 구교우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서울 청파동에서 이영희, 이정희 두 이모의 보호를 받으며 살았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4월, 15세의 어린 나이로 체포되어 포청에서 신문을 받은 뒤 형조로 이송되었다. 형조에서 어린 것이 요물이라 하여 매우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하였으나 끝까지 배교하지 않자 다시 포청으로 송환되었다. 포청에서 이 바르바라는 전보다 훨씬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당하였으나 꿋꿋이 참으며 함께 갇혀 있는 어린이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다가 5월 27일 기...
    Read More
  7. 김 로사

    김 로사 과부가 된 뒤 입교하여 열심한 신앙 생활로 친정 식구들을 입교시킨 김 로사는 1839년 1월 16일 권득인(權得仁)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포청과 형조에서 신문을 받을 때 “하느님은 신인만물(神人萬物)의 큰 주인이시라 배반할 수 없습니다." 하며 자신의 뜻을 분명히 밝히고, 여러 차례의 혹형과 고문을 이겨 낸 뒤 1839년 7월 20일 예수, 마리아를 부르며 7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이 때 나이는 56세였다.
    Read More
  8. 김성임 마르타

    김성임 마르타 인천 부평(富平)에서 태어난 김성임은 혼인에 실패한 뒤 서울에서 앞을 보지 못하는 점쟁이와 재혼하였다. 이 때부터 교리를 배우기 시작하였고, 남편이 죽은 뒤 교우들의 집을 전전하며 신앙 생활을 하였다. 천한 일을 하면서도 항상 밝은 얼굴로 생활하던 김성임은 1839년 4월 11일 자신이 몸붙이고 있던 이매임의 집에서 이매임, 허계임, 이정희와 영희 자매, 김 루치아 등과 순교를 결심한 뒤 이미 체포된 남명혁의 집을 지키던 포졸들에게 자수하였다. 포청과 형조의 혹형과 고문을 이겨 내고 7월 20일 7명의 교우와 함...
    Read More
  9. 이매임 데레사

    이매임 데레사 20세에 과부가 되어 경기도 봉천(奉天)의 친정으로 돌아온 이매임은 한 동네에 사는 여교우의 전교로 천주교에 입교한 뒤 조카 이정희와 영희를 신앙의 길로 인도하였다. 이영희가 동정 생활을 결심하여 서울로 피신하자 함께 따라가 살며 신앙 생활을 하다가, 1839년 4월 초 이매임은 남명혁과 이광헌의 어린 자녀들이 혹형을 이겨 내고 신앙을 지켰다는 이야기에 감동하여 순교를 결심하였다. 마침내 4월 11일 자수하여 7월 20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순교하니, 그 때 나이 52세였다.
    Read More
  10. 김장금 안나

    김장금 안나 서울에서 태중 교우로 태어난 김장금은 어려서부터 독실한 신앙 생활을 하였고, 중년에 이르러 과부가 되자 노모와 함께 이광렬과 친하게 지냈다. 두 집은 사이가 좋고 화목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김장금은 1839년 4월 이광렬, 이광헌 일가와 함께 체포되어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당하였으나 끝까지 신앙을 지켰고, 마침내 7월 20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51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Next
/ 11
Invalid XML in widget c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