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의 고풍 저수지 주변에는 미럭벌과 강당리 교우촌이 있었다. 미럭벌은 주변 다른 교우촌들과 마찬가지로 박해를 피해 다니던 신자들이 모여 건립한 옹기점 교우촌이었다. 서산 땅주변에 건립된 성당 가운데 이곳 신자들의 손길이 안 닿은 곳이 없을 정도로 이 일대의 신앙 중심지가 된, 번성했던 교우촌이다. 여전히 구교우 집안들이 많다.
교회 기록을 보면. 미럭벌과 강당리는 매우 큰 교우촌 이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두세(Doucet, 丁加彌, 1853~1917, 가밀로) 신부에 의해 1889년에 설립된 강당리 공소는 당시 신자 수가 120명이었으며, 퀴를리에(Curlier, 南一良, 1863~1935, 레오) 신부에 의해 1894년에 설립된 미럭벌 공소는 당시 신자 수가 90명이었다.
1919년에는 강당리 공소가 미럭벌 공소로 흡수 통합되었다. 미럭벌과 강당리 공소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다. 특히 두 곳 모두 옹기 마을로 이름난 곳이었는데, 일제 시대부터 강당리에는 점토가 모자라 미럭벌 등지에서 흙을 가져와야 했다고 한다. 1919년부터 강당리에서 공소를 치르지 않은 이유도 바로 옹기점 신자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하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미럭벌은 주변 다른 교우촌들과 마찬가지로 박해를 피해 다니던 신자들이 모여 건립한 옹기점 교우촌 이었다. 이곳에 처음 정착하여 교우촌을 형성한 신자들은 현씨, 오씨, 정씨, 박씨, 고씨, 심씨 등이었다고 한다. 정확히 알 수 없지만, 100여 년 전에도 이곳에는 신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1974년 운산 본당이 설립되기 전까지는 이곳에서 공소를 치렀다. 미럭벌, 고풍리, 강당리 신자들이 모두 이곳에 모였으며, 아마 이 서산 땅 주변에 건립된 성당 가운데 이곳 신자들의 손길에 안 닿은 곳이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미럭벌 공소는 이후 이 일대의 신앙 중심지가 되었다. 이것은 뮈텔 주교가 기록한 일기 내용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데, 그는 1899년과 1906년 두 차례에 걸쳐 이곳을 방문하고 견진성사를 집전하였다. 뮈텔 주교는 여기에서 1899년에는 미럭벌 공소 강당이 좁았지만, 1906년에는 강당이 아주 넓다고 적고 있다. 그러므로 그 사이에 신자들이 공소 강당을 증축했음을 알 수 있다. 1974년 폐지될 당시 이 강당 대지는 80평이었는데, 그 건물은 이제 마을 회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미럭벌 교우촌은 비록 공소가 폐쇄되었으나 가구 수는 30여 호 정도가 되며, 여전히 구교우 집안들이 많다. 도시 이주가 시작되기 전만 해도 윗말(60세대)과 아랫말(30세대)에 모두 90여 세대가 거주하던 큰 마을이었다. 교회 기록에 나타나는 옹기점은 그중 윗말에 있었다. 이 옹기점 흔적은 현재에도 뚜렷이 알 수 있는데. 그 규모로 보아 다른 곳에 비해 상당히 컸던 듯하다.
미럭벌이란 명칭은 마을 중앙에 있는 작은 동산에 미륵불이 있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약 20가구의 신자들이 있다.
◆ 미럭벌 공소 이웃의 옛 공소
○ 원말 : 서산군 운산면 수평리. 1886년(두세 신부, 25명), 1923년(23명)까지 존속
○ 장사목골 : 원말 이웃 공소. 1909년(퀴를리에 신부,104명), 1914년(54명)이후 원말에 통합됨
○ 노루목(장항) : 운산면 용장리. 1909년(퀴를리에 신부, 65명), 1912년(74명)까지 존속
○ 여미리 : 운산면 여미리. 1916년(라리보 신부, 33명), 1949년(서산, 91명)
○ 무르치 : 운산면 갈산리. 1910(폴리 신부, 30명), 1916년(33명)까지 존속
■ 찾아가는 길
■ 순례지 정보
소재지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장리 2구 |
지리좌표 | [공소 터] 북위 36°47′48.8″ 동경 126°35′18.9″ |
연락처 | 운산 성당(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갈산리 419-6) (041) 664-9677 FAX (041) 664-9676 구역장 김영희 발바라 (041) 664-5433 |
홈페이지 | 없음 |
미사시간 | [운산 성당] 평일 : (화목금) 오후 7:30 (수) 오전 10:00 (토) 오후 3:00 주일 : 오전 6:00, 10:30 |
교통편 | [승용차] 서해안 고속도로 서산 IC를 나와 동쪽 운산읍을 지나 남쪽으로 고풍저수지 못미쳐 삼거리에서 우회전해서 들어가면 미럭벌인 용장2구이다. 마을 가운데 공소로 사용되던 마을회관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