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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5 17:39

해미 한티 공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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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박해 시대 신자들이 해미로 압송될 때 넘어온 한티 고개 해미 쪽 공소
지역 충남 서산
박해 시대 신자들이 해미로 압송될 때 넘어온 한티 고개 해미 쪽 공소


박해 시대 신자들이 해미로 압송될 때 넘어온 한티 고개 해미 쪽 공소다. 한티 고개는 한국 천주교 순교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곳이다. 그 옛날 천주교 신앙의 전파로였고, 박해 시대 청양, 대흥, 덕산, 홍산, 예산 지역의 천주교 신자들이 체포되어 해미로 압송될 때 반드시 거쳐야 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오페르트의 남연군 묘 굴총 사건 때 왕래한 통로였으며, 순교의 길이요, 교우촌 재건의 길에 세워진 공소로 여러 성직자와 수도자를 배출한 성소의 마을이다.


한티 공소는 다른 공소에 비하여 그 변화의 추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는 한티 공소가 여러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한티 고개의 해미 방향과 덕산 방향의 양쪽 모두에 한티 공소가 있었다. 또한 해미 쪽에 위치한 한티의 경우 1901년 신자 수가 증가하자 좀 더 아래쪽에 한티 공소를 신설하고, 윗한티 공소와 아래한티 공소라고 하였다.


게다가 이 공소들은 때때로 송뜸과 벌뜸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였으며, 윗한티, 아래한티, 송뜸, 벌뜸 등을 혼용하기도 하였다. 공소가 분리, 독립하기 전까지는 신자 수가 190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해미 쪽의 한티 공소(지금의 해미면 대곡리 1구)는 밭농사를 주로 하는 전형적인 화전민 마을로 출발하였다. 교회측 기록에 때때로 나타나는 ‘벌뜸 공소’와 ‘대곡 공소’는 바로 이 한티 공소의 다른 이름이다. 또 이와 함께 기록되고 있는 “송뜸 공소”(아래 한티, 대곡리 2구)는 이곳 한티에서 해미 쪽으로 1km 남짓 더 가서 고개가 끝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데, 해방 이전에 이미 신자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해 버렸다고 한다.


한티 마을은 비록 1893년에서야 합덕 본당의 퀴를리에(Curlier, 南一良, 1863~1935, 레오) 신부에 의해 정식 공소로 설정되었지만, 교우촌은 이미 그 이전에 형성되어 있었다. 현지 교우들의 구전에 의하면 적어도 1870년대에는 신자들이 이곳에 살기 시작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교우촌의 초창기에 한티에서는 김씨, 황씨, 박씨 등의 집안이 같이 교우촌을 일구었다고 한다. 그 후 이들 집안에 자손이 번창하고, 다른 교우들이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신자 수가 크게 늘기 시작하였다.
해미 쪽 한티 공소의 초대 공소 회장은 최씨였고, 제2대 공소 회장은 김인제 안드레아였다. 황규천 마태오 회장의 회고에 따르면 이들이 공소 설립 때부터 일제 시대까지 공소를 이끌어 나갔다고 한다.
이후 한티 공소의 회장은 김씨 집안에서 맡게 되었다. 특히 제2대 김인제(김동석 회장의 부친) 회장 때, 즉 1943년에는 신자들이 힘을 합하여 마을 중앙에 공소 강당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지금까지 내려오는 한티 공소인데, 지금은 김기덕 라우렌시오 회장이 그 옆의 사가에서 살면서 이를 돌보고 있다. 이 공소는 1990년 중반에 신자 수의 감소로 폐쇄되었다. 2008년 현재 신자 세대는 15세대밖에 없으나 신부 3명, 수녀 8명을 배출한 성소의 마을이다.

▒ 남연군 묘[南延君墓]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에 있는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의 아버지인 남연군 이구(李球)의 무덤이다. 풍수지리설을 믿은 대원군 이하응이 명당자리를 찾아 이곳에 있던 옛 가야사를 불 지르고 탑을 부순 후 경기도 연천에 있던 부친의 묘를 이곳으로 이장했다.
그리고 인근 골짜기에 절을 지어 보덕사(報德寺)라 이름 짓고 개운사 주지인 도문(道文)을 초대 주지로 삼은 후에 남연군 묘 수호일품대승(守護一品大僧)이라는 직책을 내려 묘를 돌보게 하였다. 7년 후 대원군은 차남 재황(載晃)을 얻었는데, 이가 곧 철종의 뒤를 이어 12세에 왕위에 오른 고종이다. 1868년 독일인 에른스트 오페르트(Ernst Oppert)가 1866년 3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친 조선과의 통상 교섭에 실패한 뒤 대원군과 통상 문제를 흥정하기 위하여 이 묘의 시체와 부장품을 도굴하려다 미수에 그치기도 하였다. 이 사건으로 대외적으로는 서양인의 위신이 크게 떨어졌고, 크게 노한 대원군은 쇄국 정책을 강화하고 천주교 탄압을 가중시켰다.


■  찾아가는 길

■  순례지 정보
 소재지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대곡리 1구
 지리좌표  [공소 앞] 북위 36°40′44.1″ 동경 126°35′08.7″
 연락처  해미 성당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312-8) (041) 688-1557 FAX (041) 688-4366
 홈페이지  없음
 미사시간  [해미 성당]
 평일 : (월) 오전 6:00 (화목금) 오후 7:30 (수) 오전 10:00 (토) 오후 3:00, 7:30
 주일 : 오전 10:00  
 교통편  [승용차] 해미에서 덕산 방면으로 갈때 한서대학교를 지나 송덕암 교차로에서 구도로로 진입하여 대곡
 1리 마을회관쪽으로 진행한다. 마을회관에서 좌회전하여 약 200m가면 우측에 공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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