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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5 14:51

대흥 관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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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하느님의 종 김정득이 한양에서 선고 받고 고향인 대흥에서 참수 치명한 곳
지역 충남 예산
하느님의 종 김정득이 한양에서 선고 받고 고향인 대흥에서 참수 치명한 곳


충남 예산군 대흥면 사무소 옆에 있는 대흥 관아는 하느님의 종 김정득 베드로가 친척인 김광옥 안드레아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한 후, 1801년 신유박해 때 체포되어 홍주에서 엄한 문초와 형벌을 받고 고향인 이곳 대흥으로 압송되어 참수 순교한 곳이다.


김정득(金丁得, ?~1801, 베드로)은 충청도 홍주의 대흥 고을에서 탄생하여 친척인 김광옥(金廣玉, 1742?~1801, 안드레아)으로부터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베드로는 김광옥과 함께 교회 서적과 성물만을 지닌 채 공주 무성산으로 들어가 숨어 살면서 오로지 교리를 실천하는 데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이름이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던 탓에 포졸들이 쉽게 그들의 종적을 찾아내고 말았다. 이후 베드로는 홍주로, 안드레아는 예산으로 각각 압송되었다.
홍주 관장은 김정득 베드로가 끌려오자마자 그를 배교시키기 위해 엄한 문초와 형벌을 가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굴복하지 않았다. 얼마 후 베드로는 감사의 명에 따라 김광옥과 함께 청주로 이송되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서로를 권면하면서 형벌과 옥중의 고통을 견뎌냈으며, 다시 한양으로 압송되어 8월 21일에 사형 선고를 받았고 여기에는 그들의 고향으로 압송하여 참수하라는 명령이 덧붙여졌다.


예산까지 내려오는 동안 베드로와 안드레아는 그동안의 형벌로 걸음을 뗄 수조차 없을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느님이 주신 용기와 힘으로 즐거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헤어질 시간이 되자,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손을 마주 잡으며 “내일 정오, 천국에서 다시 만나세.”라고 작별 인사를 하였다. 베드로는 예산에서 얼마를 더 가서 대흥 감옥에 수감되었다. 그리고 이튿날 읍내로 끌려 나가 칼날 아래 목숨을 바쳤으니, 그때가 1801년 8월 25일(음 7월 17일)이었다.

◆ 의좋은 형제 이야기 고장

이곳은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의좋은 형제 이야기의 실제 현장이다. 의좋은 형제 이야기는 벼 베기를 끝낸 가을 밤 형제가 서로의 살림을 걱정해 자신의 볏단을 몰래 가져다주다 도중에 만나 얼싸안고 울었다는 우애담이다. 대흥 관아 앞에는 이성만, 이순 형제의 효제비(孝悌碑)(충남유형문화재 102)가 있다. 관아 옆 대흥면 사무소 앞에는 1956~2000년까지 초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되어 청소년들의 교육 자료로 활용되어 온 '의좋은 형제' 동상이 세워져 있다.
'의좋은 형제' 이야기는 세종실록과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 기록되어 민간에 전설처럼 구전되어 왔으나, 1978년 충남 예산군 대흥면 상중리에서 이성만, 이순 형제의 효제비가 발견되고, 최근에 이두문자가 해독됨으로써 역사적 사실로 밝혀졌다. 이 비는 고려초 효자로 이름난 이성만과 이순 형제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연산군 3년(1497년) 지신사(知申事) 하연(河演)의 주청에 의해 대흥면 상중리 개뱅이다리(佳芳橋) 옆에 세워졌으며, 조선초기 양식의 화강암 비석에 이성만 형제의 갸륵한 행실에 대하여 왕이 정문을 세워 표창하고 자자손손에게 영원히 모범되게 하라는 173자가 기록되었다.


예산군은 개뱅이다리 근처에 있던 효제비를 예당 저수지 수몰 위험을 염려하여 현 위치인 대흥면 사무소 앞으로 옮겼다. 의좋은 형제상 앞에 놓여진 12개의 돌에는 1964년에 발행된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려있는 '의좋은 형제'이야기 전문이 새겨져 있다.

■  순교자

◆ 김정득 베드로 ( ?∼1801년)   <하느님의 종 125위>
김정득 베드로는 충청도 홍주의 대흥 고을 태생으로 친척인 김광옥(안드레아)으로부터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신앙생활에 열심이었던 것만은 분명하지만, 그 내용은 자세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베드로는 김광옥과 함께 교회 서적과 성물만을 지닌 채 공주 무성산으로 들어가 숨어살면서 교리를 실천하는 데 노력하였다. 그러나 곧 체포되어 그는 홍주로, 안드레아는 예산으로 각각 압송되었다.
그는 김광옥과 함께 청주로 이송되었고 이곳에서 서로를 권면하면서 형벌과 옥중의 고통을 견디어 냈으며, 다시 한양으로 압송되어 사형 선고를 받았다. 헤어질 시간이 되자,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손을 마주잡으며 “내일 정오, 천국에서 다시 만나세.”라고 작별 인사를 하였다. 그는 예산에서 얼마를 더 가 대흥 감옥에 수감되었고 이튿날 읍내로 끌려나가 칼날 아래 목숨을 바쳤으니, 그때가 1801년 8월 25일(음력 7월 17일)이었다.

 

■  찾아가는 길

■  순례지 정보
 소재지  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 동서리 106-1 대흥 동헌
 지리좌표  [동헌 앞] 북위 36°36′40.6″ 동경 126°47′34.1″
 연락처  예산 성당 (041) 332-2564 FAX (041) 332-2562
 홈페이지  예산 성당 http://www.cysd.com.ne.kr/
 미사시간  [예산 성당]
 평일 : (화금) 오후 7:30 (수) 오전 10;30 (목) 오전 6:00 (토) 오후 7:00
 주일 : 오전 6:00, 10:00 
 교통편  [승용차] 충남 예산에서 남쪽에 있는 예당저수지를 왼쪽으로 끼고 저수지 거의 끝까지 가서
 대흥면사무소로 간다. 면사무소 바로 왼쪽이 대흥 관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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