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신석복 마르코(1828~1866년)
경상도 밀양의 명례 사람인 신석복 마르코는 장사를 하면서 생활하던 신자로, 1866년의 병인박해 때 창원 마포로 장사를 나갔다가 돌아오던 길에 오 야고보 등과 함께 대구 포졸들에게 체포되었다. 그때는 마르코가 천주교에 입교하여 신앙 생활을 한 지 10여 년이 지난 뒤었다.
이에 앞서 대구 포졸들은 마르코가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을 알아내고는 명례로 들이닥쳐 그의 집을 찾아낸 뒤 재산을 탈취하였다. 또 여려 날 수소문한 끝에 그가 장사를 하러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이라는 사실을 알아내고는, 마르코가 돌아올 만한 길로 달려갔다. 그리고 마침내 김해 가산이라는 곳에서 마르코를 만나 천주교 신자임을 확인한 뒤, 즉시 체포하여 밀양을 압송하였다.
포졸들은 밀양에서 하루를 머무르는 동안 마르코에게 무수한 형벌을 가하였다. 그런 다음 그를 대구로 끌고 갔는데, 이때 그 사실을 알게 된 마르코의 형제들이 돈을 마련해 가지고 대구로 가는 일행을 뒤좇아 갓다. 그들 일행을 만난 마르코의 형제들은 포졸들과 수작한 뒤, 마르코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러자 그는 형제들에게 말하기를 '한 푼도 포졸들에게 주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이로 인해 신석복 마르코는 대구로 가는 동안 자주 능욕을 당해야만 하였다. 그리고 대구에 도착해서는 여러 차례 문초와 형벌을 받아 유혈이 낭자하고 뼈도 부러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코 신앙을 버리지 않았으며, "저를 놓아주신다 하여도 다시 천주교를 봉행할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관장은 이 말을 듣자 화가 나서 다시 마르코에게 혹독한 형벌을 가하도록 하였다. 그런 다음 며칠을 옥에 가두었다가 교수형을 집행하였으니, 이때가 1866년 3월 31일로, 당시 그의 나이는 38세였다. 이후 마르코의 가족들이 그의 시신을 찾아다 고향에 안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