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오종례 야고보(1821~1840년)
오종례 야고보는 충청도 은진의 양반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천주교 교리를 실천하였다. 그리고 장성한 뒤로는 가족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면서 이웃에 복음을 전하는 데 노력하였다.
야고보는 결혼 직후 전라도 고산에서 살았는데, 진산에 살고 있던 형을 찾아갔다가 형과 다른 교우 여럿과 함께 1839년 7월에 체포되었다.
이내 전주로 끌려간 야고보는 관장 앞에서 문초를 받게 되었다. 이때 영장이 "너는 아직 젊은 나이이니 다시는 천주교를 믿지 않겠다고 하면 놓아주겠다" 고 하자,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천주님을 섬기는 행복을 알고 있는데, 어찌 형벌이 두려워 천주님을 배반하겠습니까?" 그러자 관장은 달콤한 말로는 그를 배교시킬 수 없다고 생각하고는 고문을 하라고 지시하였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다시 감사 앞으로 끌려간 오종례 야고보는 여러 차례에 걸쳐 갖가지 형벌을 받았으나 꿋꿋하게 이를 참아낸 다음 사형 선고를 받았다. 이는 그가 오래 전부터 원하던 일이었다. 반면에 그는 형이 배교하는 것을 보는 슬픔을 겪어야만 했다.
옥으로 돌아온 야고브는 다른 증거자들과 고통을 나누었다. 그들은 여러달 동안을 옥에 버려진 채 있었는데, 마침내 모든 절차가 끝나고 사형 집행일이 확정되었다. 이에 따라 야고보는 동료들과 함께 형장으로 끌려나가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으니, 이때가 1840년 1월 4일로, 당시 그의 나이는 19세였다. 그으 사형 선고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오종례는 아주 어려서부터 천주교 신앙에 깊이 빠져 가족들에게 교리를 가르쳤고, 이웃에게도 전교하였습니다. 또 입으로 십계를 외우면서 조상의 가르침을 버리기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다섯 차례에 걸쳐 문초를 받으면서도 아주 큰 기쁨이 마음에 있다고 하였으니, 이와 같은 요망한 괴물을 청명한 세상에 그대로 둘 수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