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경 안드레아
충청도 정산(定山)의 부유한 교우 가정에서 태어난 정화경은 어려서부터 열심한 신앙 생활을 하였고, 장성해서는 더욱 자유로운 신앙 생활을 하고자 고향을 떠나 수원 근처로 이사해 살았다. 이 곳에서 회장을 맡아 보며 자기 집을 공소로 내놓았고 또 서울을 왕래하며 힘 자라는 데까지 교회 일을 도왔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정화경은 매일같이 교우들을 찾아 위로하고 격려하며 순교의 마음을 북돋아 주었고, 박해를 피해 내려온 범 라우렌시오 주교에게 은신처를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그해 8월 주교를 찾고 있던 밀고자 김순성(金順性, 일명 여상)에게 속아 주교의 은신처를 알려 주었다.
서양 신부를 잡으려던 김순성 일당은 정화경을 이용하여 신부들을 체포하려고 하였으나 그들의 계략을 눈치챈 정화경은 도망하여 신부를 찾아가 자신의 어리석음을 뉘우치고 고해성사를 보았다.
9월에 체포된 정화경은 혹형과 고문을 이겨 내고 이듬해 1월 23일 33세의 나이로 포청에서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